퇴사 그리고 이직, 그 다음.

5년의 마침표..

2014년 11월, 레진에 합류하여 2019년 7월 퇴직때까지 거의 5년 이란 시간을 보내왔다. 레진의 기억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 회사의 느낌이다. 레진에 입사하기로 마음 먹은 것도 레진의 구성원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그 가운데 나도 들어가고 싶다라는 열망이 컸었고, 반대로 퇴사할 때는 내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자극을 줄 수 없는 퇴물이 되어버렸나..라는 자괴감(?)으로 인해 내 커리어의 불안함을 해소하고, 내가 줄 수 없으니 다시 다른 사람으로 부터 자극을 받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난 나를 위한 결정들을 해왔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푸념을 듣고 너무 남을 위하는 것 아니냐 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사실 딱히 그렇지 않다. 나는 이기적이고, 역시 사람은 이기적인 것. 하지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있는 팀을 두고 이직을 결심했을 때,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움은 사실 아직도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고, 이전 회사가 내가 있을 때보다 더욱 잘되어서 내가 왜 퇴사했지? 라는 부러운 마음이 들도록 응원하는 것이 위선적인 위로일 것 같다. 일단 그래도 유명한 퇴사짤들 처럼. 마침표를 찍으니 후련했다.

이직 과정.

나이가 들수록 이직의 코스트는 상당하다.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은 어렵고, 기존의 것들은 연차에 맞게 또는 상대의 기대수준에 맞게 높아야하며, 낮은 연봉은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 이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번 이직을 마음 먹기로하고 결정한 사항은 바로 “해외취업”이 었다. 이미 결론을 말하자면 해외취업은 실패했고, 현재의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의 나이가 더 많아기전에, 그리고 나의 기술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적정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해외 회사로 나가려고 정말 많은 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다. 지금 이야기지만 초반에 너무 대형회사에 시도한 것이 조금 작전 실패였다. 해외 면접의 연습을 좀 해보면서 도전했으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망상을 해본다. 해외 면접의 결과는 실패이지만 어찌보면 포기라고 볼 수도 있다.(정신승리) 거의 마지막에 진행된 캐나다의 A사 면접이 onsite까지 진행될 시점에 현실적인 이슈들을 정리하고자 와이프님과 이야기해보니,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조금 일찍이 알았더라면 힘들게 면접보고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껄 이라는 원망과 해외에 나가서 짊어져야할 가장의 불안감과 압박을 피해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복잡한 마음으로 이직의 목표가 사라졌다. 이때 살짝 멘탈이 나갔다. 그래도 이미 이직 패달을 밟아서인지 관성으로 멈출 수가 없었다. 레진에서 마음이 멀어져버렸다. 레진에서 기댈 수 있었던 선배가 떠난 다는 소식이 세간에 퍼지면서, 친분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나 역시 이직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와 분에 넘치는 자리들의 추천을 많이 해주셨었다. 어찌 보면 그냥 밍기적 거리면서 이직을 포기하려던 나의 멘탈에 불을 붙인 것일 수도 ㅋ. 그러던 와중에 투트랙으로 진행되었던 e사와 카카오가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다. e사의 처우가 좋은 상황이었지만, 뼈때리는 선배 개발자 분의 조언으로 카카오로 이직 결정하게 되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지만, 결정했다. 그래 가보자 카카오! 뭔가 슈퍼 개발자들에게 빨대를 꼽을 수 있을거야! 라는 마음으로!

휴식.

레진에는 e사의 최종합격때 퇴사 통보를 하였고 카카오는 퇴사하고 최종합격 통지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카카오에 입사일자를 조정해. 인생의 마지막(?) 방학 3주를 보낼 수 있는 찬스를 얻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아이들이 있으신 분들 중 퇴사때 개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은 방학시즌 퇴사는 비추합니다 ㅋ. 난 인생의 마지막 방학이 애들과 함께하는 방학이 되어 결국 아이들과 그 동안 바빠서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충전하는 시간으로 보내졌다. 개인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그리고 카카오에 가기전에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마무리하고 싶었던 플랜은. 뻥 하고 터졌다. 사실 더 부지런하게 꼼꼼히 시간을 보냈다면 할 수 있었지만, 쉬는 시기에 그렇게 타이트한 시간 사용을 하고 싶지않았다. 그래도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이 나중에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쉬는 동안에 그래도 틈틈이 한번 보자. 말로만 했던 주변 지인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그동안 뜸했던 오피스 투어를 쭉 돌면서 언제가 다시 뛰어들지 모르는 스타트업 세상에 연을 이어 놓았다. 3주란 시간 짧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바쁘게 힐링을 했다.

첫 출근, 첫 업무

결국 그 날이 왔다. 이직 첫 출근. 어색한 마음에 신규인력 교육반에 들어가고 교육 끝에 버디(?)크루와 함께 정말 더 어색하고 묘하게 긴장되는 업무공간에 들어섰다. 아직 3개월 이란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아서, 아직도 업무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떨림이 있지만 그 때는 더 떨렸다 ㅋ. 모든게 새롭고 생소한. 하지만 빨리 적응하고 싶었고, 빨리 뭔가 하고 싶었다. 왜냐! 들어오기전에 카카오에 기대한 것들이 컸기 때문에! 입사전에 카카오를 추천해주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팀에서 사용하는 기술 스택이 너무 내 취향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다. 현장은 현장이다. 레진과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팀이다 보니 밀려오는 운영이슈와 신규 피쳐들의 구현.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업무 루틴들과 레거시. 거기에다 팀장이 날 뽑아놓고 떠난다는 소식과 첫 업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Rails 업무까지. 살짝 당황했다. 역시 회사는 회사다. 뭐든 완벽한 곳은 없다. 그래도 내가 인복이 많아서 인지 팀원 분들이 너무 좋다. 여기 틈바구니 안에서 잘 자리 잡으면 롱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야할.

롱런. 오래 다니기. 근데 내가 귀가 얇고 인내력이 좋지 못해 이런거 잘 못한다. 동기 부여가 떨어지면 또 힘든 결정을 하려들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팀에서 할일 들을 찾아서 동기부여가 떨어지지 않는 광맥들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근데 이미 팀에 엄청난 다이아몬드 레거시 광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존재는 알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려하는. 그래서 결정했다. 이 광산의 첫 곡괭이질을 내가 함으로써, 식지 않는 동기부여 광맥을 만들기로. ㅋ 어찌 보면 무모할 것도 같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손을 데야할 것이라면 미루지말고 내가. 그리고 지금의 팀원들을 설득해서 합류시키면 팀에 큰 하나의 마일스톤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거로 기대했다. 사실 그래서 아직 곡괭이질은 아니지만 갱도 설계 계획을 팀에 공유했다. 아마 팀원분들이 미심쩍고 불안해할 수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같이하면 잘 될거라 생각한다. 이거 붙들고 있으면 시간이 진짜 총알 같이 갈거다. 할거가 너무 많아서 ㅋㅋ. 벌써 재미있고 기대된다.

누가 이 후기겸 일기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 처럼 동기부여 계속 만들며 자기 채찍질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면 아래의 공고로 팀에 지원하시길. 듣기로는 T/O가 열려 있는 모양이다.

카카오톡 서버 개발자 모집

팀원분들에게 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가 발표자료들을 만들어야한다. 지금도 코드랩을 짜다가 회고를 너무 미루면 못쓸 것 같아 휴식겸 넋두리. 지난달에 회고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쓸 이야기들이 머리속에 가득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머리가 나빠져 다 까먹었다. 두서없는 나의 일기 회고는 여기서 후다닥 마무리한다.

광맥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을 시점에 공유해보자.